...정신분석의 승패는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남김없이 이야기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환자에게 말한다. 환자는 중요하지 않거나 주체와 관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는 터무니없다고 여겨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다루어야 한다. 꿈이나 강박 관념 등을 원하는 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비판 때문일 것이다.
정신분석 작업 도중 나는 깊이 사고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는 자신의 심리적 움직임을 관찰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의 평온함과는 반대로, 사고할 때는 깊이 사고하는 사람의 긴장된 표정과 주름진 이마가 증명하듯이 주의 깊게 자신을 관찰할 때보다 심리적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두 경우 다 주의력을 집중해야 하지만, 깊이 사고하는 사람은 그것 말고 비판도 한다.
그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인지한 후 비판에 따라 일부는 거부하거나 즉시 중단시켜, 일단 시작된 사고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고, 다시 말해 지각하기 전 억눌러 버리는 사고들도 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은 오로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평상시 파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의식에 떠오른다. 이와 같이 자기 인식을 위해 새로이 얻은 재료의 도움을 빌어 병적 관념과 꿈의 형성물들을 해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외관상 '자유롭게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생각들에 대해 평상시 행사하는 비판을 포기하고 요구되는 입장을 취하기는 쉬지 않은 듯하다. '의도하지 않은' 사고들은 떠오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대한 시인이면서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쉴러의 말을 믿는다면, 시적 창작 역시 이와 유사한 태도를 전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 쉴러는 쾨르너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서 자신의 부족한 창조력을 한탄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보기에 자네 비탄의 원인은 자네의 오성이 상상력을 강요하기 때문인 것 같네. 비유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네.
오성이 용솟음치는 관념들을, 말하자면 입구에서부터 너무 엄격하게 시험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일 뿐 아니라 정신의 창조 활동에도 해가 되는 듯싶네. 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 볼일 없고 또 아주 괴이할 수 있지만, 이어지는 관념에 의해 중요해지거나 마찬가지로 사소하게 보이는 다른 관념들과 결합하여 아주 유용한 구성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네.
...그와 반대로 창조적인 두뇌의 경우, 오성은 입구의 감시에서 물러난다고 생각하네. 관념들이 '앞을 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그런 다음에야 오성은 한꺼번에 훑어보고 검사한다네.
스스로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자네 같은 비평가들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무모함 앞에서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만, 사실 이러한 무모함은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있는 것이고 지속되는 시간에 따라 사고하는 예술가와 꿈꾸는 사람이 구분된다네.
그러니 자네들이 재능이 없다는 탄식은 너무 일찍 거부하고 엄격하게 구분짓기 때문이라네." (1788년 1월 1일자 서한)
...바야흐로 1998년, 드디어 과학은 비밀의 열쇠를 손에 쥐었다. 미국의 두뇌 연구가 마커스 라이클이 자기공명영상을 연구하다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실험 참가자가 테스트 문제에 집중하면서 생각에 골몰하기 시작하자 두뇌 특정 영역들의 활동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라이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꾸로 이 영역은 아무것도 하지 않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테스트가 끝나고 실험 잠가자가 과제에 집중하기를 멈추자, 이 영역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신경 활동의 기묘한 특성을 두고 라이클은 나중에 '디폴트 네트워크 Default Network'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어떤 특별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생각의 물결을 따라갈 때 작동한다.
...도대체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두뇌가 의식적으로 생각을 놓아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런 일은 왜 필요하며,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인가?
이 물음의 답은 디폴트 네트워크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지 분석해볼 때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연구가 보여주듯, 이 데폴트 네트워커는 하루 일과 중에 긴장을 풀고 몽상을 즐길 때뿐만 아니라, 잠을 자는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의 환자, 심지어 원숭이에게서도 일어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이 모든 정황은 디폴트 양태가 아주 근본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암시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디폴트 네트워크를 감당하는 뇌의 영역은 뇌졸증에 걸릴 위험이 지극히 적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다시 말해서 이 영역은 특히 혈액순환이 왕성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분명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음은 두뇌라는 생각 기관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모양이다. 이 기능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이처럼 철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두었으니 말이다.
...쾰른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카이 포겔라이(Kai Vogeley)는 디폴트 네트워크야말로 우리를 비로소 인간답게 하는 능력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라고 확인한다.
"우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두고 생각을 할 때 두뇌의 어떤 영역이 활동하는지 알고 있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사실은 정신병을 앓는 환자의 '디폴트 양상'이 정상인의 그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아무 생각 없음'은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다. (...)
"합리적이고 의식적으로 계속 문제와 씨름하라. 그러나 결정은 미루어두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잠자리에 들어 그 문제를 베개 삼아 잠을 자도록 하자. 그럼 당신의 대뇌피질에서 자리한 무의식의 직관이라는 네트워크가 당신을 위해 나머지 일을 처리할 것이다."
생물학자이자 독일 학술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두뇌 연구가 게르하르트 로트 Gerhard Roth 의 충고다.
- 울리히 슈나벨 (Ulrich Schnabel), "휴식, 행복의 중심"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방식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창조 활동은 자신을 알아가는 활동이라는 뜻이겠지.
우리는 너무 의식과 이성의 힘을 과대 평가하고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자신에게 요청할 것은 좀 더 의식을 놓아주는 일이다.
깊이 사고하는 것은 잠시 놓아두고, 자신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자. 편안하게.
아래의 프레트 루크스 말대로, 그게 우리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나도 믿는다.
"두뇌는 저 혼자서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논다. 말하자면 두뇌가 자기 자신 안으로 산책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 두뇌 연구가 울프 징거 Wolf Singer
"긴장을 풀고 편히 쉬세요.
아마도 그게 당신이 세상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일 것입니다."
- 경제학자, 환경문제전문가 프레트 루크스
이소라 - Track 1